미국 연방법원이 국방부가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을 국가안보상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하고 연방정부와 방산업체의 거래를 제한한 조치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다.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리타 F. 린 판사는 8월 27일 앤트로픽과 미국 국방부 사이의 소송에서 국방부의 조치가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보복에 해당하며, 수정헌법 제5조의 적법절차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단순히 정부와 민간기업 사이의 계약 문제를 넘어 국가안보를 이유로 정부가 기업의 정책적 입장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출발점은 앤트로픽이 자사의 AI 모델 클로드를 미국 정부가 모든 합법적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없애라는 국방부 요구에 응하지 않은 데 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대부분의 사용 제한을 완화했지만 미국 시민에 대한 대규모 감시와 치명적 자율무기 운용이라는 두 분야에 대해서는 제한을 유지했다. 앤트로픽은 해당 분야에서 AI 기술의 오작동 가능성과 인권 및 민주적 가치에 미칠 영향을 이유로 들었다.
양측의 협상이 이어지던 가운데 피트 헤그세스 당시 국방장관은 2월 24일 앤트로픽 측과 회동했고, 회사가 ‘모든 합법적 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공급망 위험 지정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 전체에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중단하도록 지시했고, 헤그세스 장관 역시 앤트로픽을 국가안보상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다. 국방부의 조치는 군 관련 기관뿐 아니라 연방정부와 거래하는 방산업체가 앤트로픽과 상업적 거래를 하는 것까지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법원은 국방부가 제시한 국가안보상의 위험 근거를 면밀히 검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국방부가 제출한 행정기록은 비교적 제한적이었으며, 정부가 당초 문제로 제시했던 앤트로픽의 기술에 대한 ‘백도어 접근’ 가능성도 사실관계상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앤트로픽의 기술이 다른 이른바 ‘블랙박스’ AI 모델보다 국가안보상 특별히 위험하다는 근거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에 따라 정부의 조치가 앤트로픽의 정책적 견해와 비판에 대한 ‘위헌적 보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민간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법원도 국방부가 어떤 AI 기업을 공급업체로 선택할 것인지는 정부의 재량에 속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특정 기업의 정부 비판이나 정책적 입장을 이유로 광범위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판단이다.
이번 판결로 앤트로픽은 국방부와의 법적 분쟁에서 중요한 승기를 확보했다. 다만 이번 판결이 미국 정부가 앤트로픽과 반드시 계약을 체결하거나 클로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방부는 여전히 자사의 필요에 따라 다른 AI 기업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앤트로픽이 워싱턴DC에서 제기한 별도의 소송은 계속 진행 중인 사안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만으로 양측의 법적 분쟁 전체가 종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