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머리에서 발 끝까지 걸리는 시간

민은숙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일과 그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느린 템포는 대강 발을 맞출 수 있으나 박자가 잘게 쪼개지는 순간 발 감각은 흐트러진다. ‘원앤, 투, 쓰리앤 포, 파이브, 식스앤, 세븐앤, 에잇앤.’ 머리는 박자를 따라가지만, 몸은 번번이 길을 잃는다. 정확함은커녕, 강사의 동작을 겨우 뒤쫓기만 해도 숨이 찬다.

 

변화는 뜻밖의 계기에서 시작됐다. 집 근처 문화센터에 직장인 대상 저녁 수업이 개설되고 친구의 권유로 라인댄스를 시작했다. 그렇게 발을 들인 지 어느덧 일 년 반이다. 처음 몇 달은 기본 스텝조차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었다. 결국 “정말 몸치”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 말은 오히려 마음속 오기를 자극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그 빈틈을 채우고 싶어지는 성격 탓이다. 집에 돌아와 기본 스텝 영상을 반복해 보며 홀로 연습을 이어갔다.

 

전환점은 ‘러브스 탱고(Love’s Tango)’였다. 기본 동작조차 따라가기 벅찼던 내가 더 빠르고 강한 리듬을 가진 탱고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으로 ‘끝까지 해 보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았다. 한 곡의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몸에 새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과 어설퍼도 누구보다 먼저 그 곡의 스텝을 외워냈다.

 

이후 변화는 몸과 마음 모두에서 나타났다. 익힌 스텝의 이름을 잊어도 발의 흐름만으로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이 이어졌다. 몸이 리듬을 기억하기 시작하자 새로운 곡을 배우는 속도도 빨라졌다. 음악은 더 이상 따라잡아야 할 정복 대상이 아니라 함께 흘러가는 물이 되었다. 그 물결 위에 서툰 웨이브 하나를 얹을 여유도 생겼다.

 

몰입은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졌다. 영상팀에 참여하면서 연습의 밀도는 한층 높아졌다. 처음 열 명이던 인원은 네 명으로 줄고 촬영 주기도 점점 짧아졌다. 이제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사님이 카메라를 켜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열을 맞춘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연습해 온 몸이 솔직하게 동작을 표현하는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얼마 전,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다. 오전과 저녁 영상팀이 함께 전국 라인댄스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이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망설임도 없었다.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연습으로 채워졌다. 여러 곡이 섞인 음악에 맞춰 대열을 바꾸고 동선을 맞추며 동작을 반복했다. 평일 월·수요일 밤과 토요일 오후를 쏟아부은 연습 끝에 찾아온 발끝의 통증마저 기분 좋게 다가왔다.

 

연습실을 나오자마자, 한여름의 열기가 온몸을 감쌌지만, 흘린 땀은 오히려 청량하게 느껴졌다. 함께 둘러앉아 먹는 식사는 유난히 깊은 만족감을 남겼다. 몸을 고단하게 사용한 뒤에야 비로소 누리는 정직하고 분명한 기쁨이었다.

 

여전히 완벽한 동작과는 거리가 먼 몸이다. 엇박을 만날 때면 여전히 발끝이 엉키곤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게 있다. 머리로 이해한 박자가 발끝의 동작으로 건너가기까지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시차는 오직 반복이라는 정직한 노동으로만 채워진다.

 

한때 박자 앞에서 머뭇거리던 사람이 무대에 선다. 얼마나 빨리 익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몸에 남을 때까지 반복하는 힘이다. 머리에서 발 끝까지 걸리는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만큼 우리는 비로소 자기만의 리듬에 도달한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작성 2026.08.05 09:50 수정 2026.08.0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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