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푸른 눈동자의 바이칼 <2부>

여계봉 대기자

 

새벽에 알혼섬 후지르 마을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바이칼의 감추진 어두운 이면을 보게 된다. 과거 어촌이었던 마을 포구에는 녹슨 어선들이 황량한 모습을 하고 호수가 아닌 모래 위에 정박해 있다. 알혼섬 주민들의 주업은 고기잡이와 목축이다. 바이칼에서만 잡히는 연어과 민물생선인 오물(Omul)을 남획하는 바람에 어획량이 크게 줄어 어선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관광 숙박업소들이 속속 들어서는 바람에 바이칼의 자연이 훼손되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출어를 포기하고 방치된 바이칼의 어선들

 

오늘은 소설 ‘유정(有情)’에 나오는 바이칼 호수 서쪽 리스키비얀카로 간다. 여기는 바이칼의 호숫물이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묵고 있는 민가가 있는 곳이 바이칼 서편 언덕’이라고 했으니 이르쿠츠크와 가까운 어촌 마을 리스트비얀카나 그 인근쯤 되지 않을까.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최석은 세상과 동떨어진 바이칼 서쪽 호수의 브라트족 집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유일한 친구 N에게 보낸 편지에서 “브라트족 주인 노파는 잠들고, 달빛 실은 바이칼 물결이 어촌 앞 바위를 때리고 있소.” 소설 속 주인공이 갈등과 번민 속에서 살았던 호반의 오두막집은 어디에 있었을까. 

 

리스키비얀카의 딸지 민속박물관

 

이곳 원주민 에벤카족과 브라트족, 그리고 슬라브족이 살았던 자작나무 숲속의 딸지 민속박물관과 강가를 거닐어 본다. 리스트비얀카의 작은 항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이칼 호수를 1시간이나 돌고, 바이칼호수를 빠져나가는 앙가라강을 볼 수 있는 체르스키 전망대에도 올라 한참을 둘러본다.

 

바이칼과 앙가라강을 모두 볼 수 있는 체르스키 전망대

 

브라트족이 모여 사는 강가의 민가에 들린다. 깊은 숲속의 호반 식당에서 전통 민속 공연을 보면서 러시아식 전통 꼬치 샤슬릭에 보드카를 몇 잔 마신다. 취기가 오르자 공연단 손에 이끌려 건네주는 전통 악기로 같이 연주도 해본다. 우리와 외모와 문화가 너무나 흡사한 브라트족 예쁜 처자가 부르는 ‘카츄사’ 노래에 짙은 연민과 향수를 느끼니 가슴이 저며 와서 혼자 살며시 식당을 빠져나온다. 

 

브라트족 전통 민속 공연

 

최석은 친구 N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인제 바이칼에 겨울의 석양이 비치었소. 눈을 인 나지막한 산들이 지는 햇빛에 자줏빛을 발하고 있소. 극히 깨끗하고 싸늘한 광경이오. 아듀!

 

이 편지를 우편에 부치고는 나는 최후의 방랑의 길을 떠나오. 찾을 수도 없고, 편지 받을 수도 없는 곳으로...” 최석은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깊은 삼림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살다가 얼마 뒤 병들어 죽는다. 정임은 최석이 막 숨을 거둔 뒤 오두막에 도착한다. 정임은 병든 상태로 최석이 잠든 시베리아에 남기로 하고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자작나무와 적송이 우거진 바이칼의 호반

 

어둠에 젖어가는 숲속 식당 호숫가를 거닐며 최석의 마지막 오두막을 찾아본다. 자작나무와 적송이 우거진 저기쯤일까? 숲속을 한참 헤매다가 찾은 오두막에는 최석도, 정임도 없었다. 이곳을 다녀간 춘원의 흔적만 있었을 뿐이다. 바이칼을 그리워한 소설 속의 최석은 젊어서 이 곳을 여행한 이광수였던 것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바이칼 호수

 

가을하늘같이 푸르고 맑은 이르쿠츠크 상공을 비행기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창문 아래에서 에메랄드빛 바이칼 호수가 햇빛에 반짝이고, 호숫가로 이르쿠츠크와 울란우데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철로가 실낱같이 아련하게 보인다. 지구에서 가장 맑은 바이칼은 앙가라강을 거쳐 예니세이강으로 합류되어 북극해로 흘러들겠지. 오랜 시간 동안 바이칼을 동경하고 그리워해 온 내 마음도 호수로 내려보낸다.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7.11 10:25 수정 2026.07.1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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