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배움은 왜 배운 자를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이진서

지금을 평생교육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단순히 나이 들어서도 무언가를 계속 배운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누구나 배움의 도상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책적 구호가 아닌, 인간이 본질적으로 미완의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고백에 가깝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여전히 극단적인 행태로 공동체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이들의 언어를 접하면서 솔직히 평생교육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충분히' 배운 이들이 세계를 파괴하는 장면은, 배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자체를 되묻게 만든다. 그렇지만 나는 이 글을 누군가를 '가르쳐' 보겠다는 의지로 쓰지 않았다. 교육자로서 나의 오래된 궁금증이기도 한, '배움은 왜 배운 자를 바꾸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옹색한 나의 답변임을 미리 밝혀둔다.


우리가 오래토록 믿어온 것

 

누군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느낄 때, 보통은 상대의 무지함을 일깨우려고 애쓴다. 알면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고, 사실 그 믿음 자체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믿음은 동시에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한 존재로 가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앎이 곧 변화로 이어진다는 이 직선적 도식은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무너진다. 그렇다면, 배움이 배운 자를 바꾸지 못한다는 역설에 가까운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단순히 교육의 효능에 대한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혹은 인간은 무엇을 통해 사회적 인간이 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인간이 무언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정보가 들어오면 이성이 판단하고 그것에 감정이 반응하면서 배움의 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에 가깝다. 배움을 포함한 인간의 어떠한 외부적 자극의 수용도 이성이 아닌 몸의 반응이 먼저이고, 그것이 이후의 판단 전체를 지배한다.

 

이때의 '몸'은 단순한 생물학적 기관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 감정이 축적된 하나의 반응 체계에 가깝다. 몸이 이미 '아니다'라고 느낀 것에 대해서는, 이성은 그 느낌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사후적으로 끌어올 뿐이다. 이것이 확증편향의 정체다. 단순히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게 아니다. 몸이 이미 믿은 것을 머리가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몸이 거부한 상태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이럴 땐 더 많은 정보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정보는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재료로 흡수될 뿐이다.

 

배운 방식이 몸에 새겨지다

 

그렇다면 무엇이 몸의 반응 방식을 결정하는가. 인간의 배움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배움의 내용만이 아니다. 배우는 행위 자체를 통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익히는 것으로 배움은 시작된다. 이미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전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먼저 배운다. 어떤 문화적 환경에 머물고 있는가, 누구에게서 어떤 말들을 반복적으로 들었는가, 어떤 공동체 안에 머물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이 먼저 몸에 새겨진다.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논리가 아니라 감성으로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배움은 주어진 특정한 환경과 관계 안에서 일어나며, 최초 배움의 원형은 몸에 새겨져 일생을 두고 지속된다.

 

나는, 우리 몸에 새겨진 배움의 방식 자체가 이미 특정한 구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개인적 습관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와 관계 속에서 형성된 감각의 구조다. 무엇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낯설게 느끼는지, 무엇을 당연하게 알아야 할 것으로 여기고, 무엇을 굳이 알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는지, 이 모든 감각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서 이미 선험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오해는 그래서 뿌리가 깊다. 그러나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성 과정에는 언제나 맥락과 권력이 개입한다. 누가 말하느냐, 어디서 말하느냐, 어떤 언어로 말하느냐에 따라 어떤 것은 권위 있는 지식이 되지만, 어떤 것은 불필요한 소음이 되기도 한다.

 

모든 지식은 위치성을 가진다. 인간에게 중립적 인식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안다고 느끼는 것들조차도 그것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만들어낸 감각이다. 그 위치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자리일수록, 권력의 언어일수록 자신의 앎이 보편적이라고 여긴다.

 

앎의 구조적 실패

 

다시, 불편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배움이 배운 자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의 효용보다 먼저, 그것이 누구의 지식이며 어떤 방식으로 몸에 들어왔는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앎과 삶이 극단적으로 동떨어진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나는 이것을 개인의 위선이기 이전에 앎의 구조적 실패라고 명명한다.

 

지식은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은 '가르쳐지지' 않는다. 그것은 설명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실천과 경험 속에서만 체화되는 것이다. 오로지 스스로 익힐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각자 삶의 경험치를 넘어서기 어렵다. '그렇게' 살아야 배운 대로 살아지는 것이다. 각자의 지식은 각자의 몸 안에서만 부활한다.

 

다르게 배운다는 것

 

지식 과잉의 시대, 내가 앎의 구조적 실패라고 부르는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르게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총량을 늘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몸이 다른 경험을 하도록 스스로를 다른 자리에 놓는 것, 다시 말해 익숙한 감각을 흔드는 경험이 필요하다. 다양성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보다, 실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경험이 더 깊은 변화를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먼저 묻는 성찰의 경험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무관하게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도, 배움에 대한 갈급함도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이미 서 있는 위치에서 확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배움이 몸에 닿으려면 관계가 필요하고, 관계가 자라려면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가 싹트려면 안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불평등은 바로 그 안전을 먼저 허물어 버린다. 지식의 위계는 더욱 굳어지고, 다르게 배운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배움이 배우는 자를 즉각적으로 바꾸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배움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르게 배우는 일은 이제 개인의 성장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몸이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배움은 사람을 바꾼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그렇게 사람이 바뀔 때 공동체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아는 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살아본 방식'으로 바뀐다. 몸이 먼저 안다. 그리고 몸은, 함께 살아온 시간을 기억한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6.04.27 10:40 수정 2026.04.27 10:48

RSS피드 기사제공처 : 코스미안뉴스 / 등록기자: 한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AI부동산경제신문 부동산 30초 브리핑 2026년 10월 23일(금)
사장님!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신규창업vs인수창업?
AI광고 영상 제작부터 광고 송출까지 가능한 광고대행사 준콤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의 목소리를 담는 뉴스 더초이스
합법적 채무탕감 개인회생!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개인회생상담 ..
️ 미국 핵심광물에 20억 달러 이상 투자…한국엔 위기일까, 기회일까? ..
인류와 지구의 더 나은 미래, 행동하는 환경 저널 '에콜로지 코리아(EC..
선무도 #골굴사 #전통무예 #친일반민특위
소상공인 동행-대경배관수리편-
권리금 분석은 어떻게?
더초이스 비즈니스 어워즈 고객의 선택과 신뢰를 공식적인 브랜드 가치로 증..
[준콤] 서오릉장어대장_엘리베이터광고_30초(2026)
두산위브더제니스 부천, 더블역세권 49층 2,008가구 대단지 주목!
KTX·SRT 하나의 앱으로 예약!코레일+#KTX #SRT #코레일플러스..
계좌의 내 돈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친환경 캐릭터 굿즈로 소비자 마음 사로ᄌ..
독립 운동가 김시현
요즘 비트코인 근황
유기농 유정란 가격 비교
서울 아파트값 86주째 상승 \'역대 최장\'
프랜차이즈 가맹점 매도는 어떻게?
허경환 유행어 총출동! 판촉물은 세종기프트
천재 강아지 다이빙
스프링힐스, 친환경 골프장으로 18ᄒ..
선무도 골굴사 #반민특위 #korean #독창성 #골굴사 #선무도 #..
해외부자들은 코인을 얼마나 들고 있을까? (2편)
귀농귀촌매뉴얼북이 PDF책으로 나왔습니다. 잎새영상
유튜브 NEWS 더보기

"2026년 12월 31일 고양시의 선택은?" 산황동 골프장 증설 15년 갈등… 환경도 살고 골프장도 사는 ...

[전남 워케이션] 함평 스톤델리아 리조트와 무안 황토갯벌 맨발축제 현장! - 뇌 피로를 리셋하는 울트라 어싱...

리더경제 차를 번쩍 든 로봇https://www.leader-economy.kr/news/478343#리더#...

리더경제 김정은 사망설 확산…군 행사 참석 보도https://www.leader-economy.kr/new...

리더경제 구급차는 왔다…그런데 국가는 함께 왔습니까?#리더#경제 #리더경제#민생국감#국정감사#응급의료#섬의...

리더경제 젠슨 황 옆 작은 오리https://www.leader-economy.kr/news/478341#...

리더경제 중동에서 공격받은 배…다음은 한국 주유소 가격표일까https://www.leader-economy....

리더경제한복은 언제부터 ‘특별한 날의 옷’이 됐을까https://www.leader-economy.kr/ne...

https://youtube.com/shorts/sKPghvw8N4g?si=mdrTykroYX6WXH9b

리더경제 기준금리는 연 3.00%에서 멈췄는데, 왜https://www.leader-economy.kr/ne...

리더경제 ️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논의https://www.leader-economy.kr/news/4778...

소방관 조문 때 \'응급 전용\' 주차한 민주당 의원 2명…김현·박정|지금 이 뉴스

국내외 명문대 가려면 S.F.Art를 기억하세요

더샵센텀스타 88평 인테리어 with 420 design studio

리더경제 울산 리드앤톡 영어도서관 남구무거센터 차소민 원장https://www.leader-economy.k...

학생, 진짜 괜찮은 애다.

안산대학 연합 유니온페스티벌 SPOT

민경선 시장의 탄원서에 대한 역질문 ④ 시민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고양시의 공론화는 제대로 이루어졌습...

리더경제 프랑스시위 불씨는https://www.leader-economy.kr/news/475942#리더#...

리더경제 테슬라 로드스터가 공중에서 방향을 틀었습니다https://www.leader-economy.k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