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영어교육에서 ‘영어원서 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책을 많이 읽으면 영어 실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된다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그 경험이 저절로 중·고등 영어, 나아가 수능 영어 실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초등 시기의 영어원서 읽기는 어떻게 해야 장기적인 영어 실력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영어원서 읽기를 중심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리딩클라우드 영어학원 김영주 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Q. 초등학생에게 영어원서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영주:
저는 영어원서 읽기의 가장 큰 장점을 ‘영어를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는 언어로 경험하게 한다는 것’에서 찾습니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 문제를 푸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가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수백, 수천 개의 문장을 문맥 속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는 경험은 전혀 다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나 문법도 실제 문장 안에서 계속 만나면서 비로소 자기 것이 됩니다.
특히 초등 시기는 비교적 입시 부담이 적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영어를 접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때 만들어진 읽기 습관과 독해 체력이 중·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 큰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영어원서를 많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수능 영어도 잘하게 될까요?
김영주: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을 학부모님들께 가장 많이 말씀드립니다.
‘영어책을 많이 읽으면 수능 영어를 잘한다’는 말에는 중간 과정이 빠져 있습니다.
원서 읽기를 통해 충분한 어휘와 문장 감각, 읽기 속도, 배경지식을 쌓는 것은 굉장히 좋은 출발입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글은 길어지고 구조가 복잡해집니다. 단순히 내용을 재미있게 이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글의 중심 생각을 찾고, 문단 간 관계를 파악하고, 필자의 의도와 논리 구조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다독으로 쌓은 언어 경험을 ‘정확하게 읽고 분석하는 힘’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Q. 리딩클라우드에서 ‘다독과 정독’을 함께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김영주:
맞습니다. 저는 다독과 정독을 서로 반대되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독은 아이에게 영어의 양을 제공합니다. 재미있는 책을 자신의 수준에 맞게 충분히 읽으면서 어휘와 표현을 자연스럽게 축적하고, 영어 문장에 익숙해지게 합니다.
반면 정독은 읽은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훈련입니다. ‘이 글의 핵심은 무엇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 문장이 앞 문장과 어떤 관계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다독이 영어의 숲을 충분히 경험하는 과정이라면, 정독은 그 숲의 구조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뤘을 때 영어원서 읽기가 단순한 독서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학습을 위한 독해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Q. 초등 영어와 수능 영어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나요? 초등학생부터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영주 원장: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초등학생에게 수능 문제를 일찍 풀게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답게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자신의 말로 설명하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능 영어 지문을 보면 결국 낯선 글을 읽고 제한된 시간 안에 핵심을 파악해야 합니다. 어휘 하나하나를 해석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 힘을 고등학교에 가서 갑자기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초등 때부터 책을 통해 쌓아온 읽기 경험이 중등의 학습 독해를 거쳐 고등의 논리적·학술적 글 읽기로 자연스럽게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초등학생의 수능 준비’라기보다 읽는 힘의 장기적인 성장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Q. 영어책의 레벨을 빠르게 올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부모들도 많습니다.
김영주:
상담할 때 정말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우리 아이 SR이 몇 점이에요?”, “언제 챕터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이죠.
물론 객관적인 리딩 지표는 아이의 현재 수준을 파악하는 데 유용합니다. 하지만 숫자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같은 리딩 점수를 가진 아이도 실제 읽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다릅니다. 한 아이는 빠르게 읽지만 세부 내용을 놓칠 수 있고, 다른 아이는 천천히 읽어도 내용과 인물의 감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점짜리 책을 읽느냐보다 그 책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느냐를 함께 봐야 합니다.
특히 Early Reader에서 Early Chapter Book, Chapter Book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무리하게 레벨만 높이면 오히려 책 읽기의 즐거움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현재 단계에서 충분한 읽기 경험을 쌓도록 기다려주는 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Q. 중학교 이후에는 영어원서 읽기를 줄이고 문제풀이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까요?
김영주:
입시를 준비하려면 문제풀이 훈련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때도 읽기의 기반이 중요합니다.
중·고등 영어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면 단어를 몰라서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문장은 해석했는데 ‘그래서 이 글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해력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원서 읽기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문학과 다양한 주제의 글까지 읽기의 폭을 넓히면서 동시에 시험에서 요구하는 독해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결국 ‘책 읽는 영어’와 ‘시험 영어’를 어느 순간 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만든 읽는 힘 위에 시험 독해 기술을 얹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향입니다.
Q. 마지막으로 초등 영어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영주:
아이의 영어 실력을 너무 빨리 숫자로 확인하려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어책 한 권을 읽고 웃었던 경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스스로 책장을 넘겼던 경험,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앞뒤 내용을 통해 의미를 짐작했던 경험들이 당장 시험 점수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이 안에 ‘읽는 힘’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수능 1등급을 만드는 영어가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 문제를 푸는 영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초등 시기에 충분히 읽고, 읽은 것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놓는 것. 그것이 오히려 긴 영어 학습에서 가장 탄탄한 준비가 될 수 있습니다.
영어교육의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번역과 학습 도구가 일상화되면서 단순히 영어 단어의 뜻을 알고 문장을 해석하는 것 이상의 능력도 요구되고 있다.
김 원장은 “도구가 발전할수록 결국 중요한 것은 주어진 글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영어원서 읽기의 최종 목표 역시 책의 권수나 리딩 점수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말했다.
리딩클라우드가 강조하는 ‘다독에서 정독으로, 그리고 학습 독해로’ 이어지는 과정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초등 시기의 즐거운 영어 독서가 중등의 깊이 있는 읽기를 거쳐 고등의 학습 독해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읽기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