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는 존재가 이름으로 정체성이 확립되는 나이가 바로 3세다. 이름은 단순히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기 위해 붙이는 표식이 아니다. 이름은 세상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단계이며 사람들과의 공감과 소통을 위한 다리 같은 존재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 넓은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알아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은 한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처음 받는 작은 주소이자, 존재한다는 첫 번째 증명이다. 이름은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가 평생 채워나가야 할 빈 문장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에 자신의 운명을 부여받는 것이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라는 말을 배우고, 자신의 이름을 듣고 그것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간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곧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일이며, 동시에 나와 타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일이다. ‘나’라는 이름이 생기는 순간부터 인간의 세계에는 ‘너’라는 이름도 함께 들어온다. 이름이 아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름은 삶의 답이 아니라 삶을 시작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평생 자신의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이름이 기대했던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이름은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간다.
그러나 이름에는 또 하나의 힘이 있다. 우리는 이름을 부름으로써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는가 하면 이름을 함부로 부름으로써 존재를 훼손할 수도 있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고, 이름을 잊는다는 것은 때로 그 사람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이름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 인간이 세상에 남기는 작은 문학이며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존재가 된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인간에게 이름이란 존재의 동의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하나의 이름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현실의 이름도 있고, 인터넷의 이름도 있으며, 수많은 계정과 숫자와 데이터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이제 인간은 이름 하나로 불리는 존재를 넘어 데이터로도 기억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데이터가 나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나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검색 기록이 나를 말해줄 수 있고, 알고리즘이 나의 취향을 예측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곧 ‘나’는 아니다. 자신만의 이름 속에 축적된 사유와 사상과 가치와 인간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름은 나의 고유성이며 존재 그 자체이다.
세상에 나와 첫 이름을 가지면서 우리는 부모로부터 배움을 익히고 점차 자라나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결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불러야 할 이름이 있으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이름은 나를 세상과 구별하면서 동시에 세상과 연결한다. 나는 누구인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가. 이 질문은 3세의 아이에게서 시작하지만, 일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가 된다. 인간으로서 ‘나’를 발견한 존재가 이제 하나의 이름으로 세상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름은 삶의 첫 정체성이자 운명을 써 내려가는 힘이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출판사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