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이제는 ‘대기업 육성’에서 ‘시장 진입’으로 가야 한다

강한 대기업만으로는 K-방산의 미래를 완성할 수 없다

AI·로봇·소재·우주 등 민간 기술기업이 들어오는 열린 방산 생태계가 필요하다

융합혁명 저자 양현상 박사

방산의 다음 과제는 무엇인가. 이제는 ‘더 큰 방산기업’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기술기업이 방산시장에 들어오고, 기존 기업과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는 시장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다. 지난 9월 21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방산물자 시장의 신규기업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방산물자·방산업체 지정제도로 소수 지정업체가 특정 방산물자를 공급하는 구조를 개선하고, 특정 품목을 계속 방산물자로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지 재검토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규제개선의 문제가 아니다. K-방산의 산업정책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그동안 방산정책은 강한 체계기업을 육성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대규모 연구개발과 생산능력을 갖춘 기업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면서 K-방산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러나 산업이 성장할수록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강한 기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더 많은 기업이 어떻게 시장에 들어오게 할 것인가”​다.

 

방산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국가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품질, 보안, 신뢰성, 공급 안정성 등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개방이 해법은 아니다. 핵심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진입장벽과 경쟁을 제한하는 불필요한 장벽을 구분하는 것이다. 특히 AI, 로봇, 센서, 반도체, 우주항공, 첨단소재, 사이버보안 등 민간 기술이 무기체계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문제는 이들 기업 상당수가 기술은 있지만 국방시장에 들어가는 방법을 모른다는 데 있다. 따라서 방산 진입을 단순한 ‘방산업체 등록’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기업의 기술을 분석하고, 국방 소요와 무기체계를 연결하고, 연구개발과 실증을 거쳐 체계기업이나 국방조달시장으로 진입하는 ‘방산시장 진입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기존 대기업의 역할을 축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체계기업은 K-방산의 핵심 자산이다. 다만 체계기업을 중심으로 전문 중견기업, 혁신 중소기업, 기술 스타트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공정위가 이번 간담회에서 국내 방산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바람직하다고 밝히면서도 협력업체와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산의 경쟁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면 기존 기업에도 기술혁신의 압력이 생긴다. 결국 신규기업의 진입은 기존 방산기업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혁신 기반을 넓히는 일이 될 수 있다. 최근 방위사업청이 방산업체의 뇌물·담합·허위서류 제출 등에 대한 경쟁입찰 감점기준을 강화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담합과 허위서류 제출의 부과점수는 기존 5~10점에서 10~20점으로 상향됐다. 경쟁을 확대하는 것과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함께 가야 한다.

 

지역 방산정책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모든 지역이 대형 방산기업의 생산공장을 유치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역에 있는 AI 기업은 국방 AI로, 정밀기계 기업은 방산 부품으로, 소재기업은 국방 특수소재로 연결하는 전략이 가능하다. 지역산업과 국방수요를 연결하는 것이 곧 방산 생태계 구축이다. 앞으로 방산정책의 성과도 달라져야 한다. 방산 수출액과 매출액뿐 아니라 신규 진입기업 수, 민간 기술기업의 국방사업 참여, 중소·중견기업의 방산 매출 확대, 대·중소기업 공동개발 등을 함께 봐야 한다. K-방산은 이제 성장의 다음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강한 대기업은 필요하다. 그러나 강한 대기업 몇 곳만으로 강한 방산 생태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K-방산의 정책 초점은 ‘더 큰 기업’에서 ‘더 넓은 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국가안보에 필요한 문턱은 지키되,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은 더 넓혀야 한다. K-방산의 다음 경쟁력은 기업의 숫자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기업을 국방시장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에서 결정될 것이다.

작성 2026.09.22 01:16 수정 2026.10.0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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