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우치다 타츠루의 교육철학 : 배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진서

우치다 타츠루는 자신의 오래된 저서 《스승은 있다》에서 우리가 배움에 대해 갖고 있는 한 가지 상식을 전복한다. 우리는 흔히 훌륭한 스승을 먼저 알아보고, 그의 가치를 확인한 뒤에 비로소 그에게 배우기로 결정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치다는 이러한 순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스승의 가치는 배움이 끝난 뒤에야, 혹은 배움이 한창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사후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배우기 전에 미리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의 범주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배우는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 시대 배움의 문법이 안고 있는 근본적 곤경이 드러난다. 오늘날 교육은 철저히 거래의 언어로 조직되어 있다. 학생은 소비자로 간주되고, 교육은 상품이 되며, 배움은 투입 대비 산출로 계산된다. 이러한 문법 속에서 학습자는 배우기에 앞서 다음의 것을 먼저 고민한다. 이것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이 강의의 가성비는 얼마인가. 이 지식은 시험과 취업, 스펙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배움의 가치를 사전에 저울질한 뒤에야 비로소 배움을 시작하겠다는 이 태도야말로, 우치다가 보기에 배움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세다.

 

우치다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증여’의 구조로 설명하는 대목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미 무언가를 받았다는 감각, 곧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채무 의식 속에서 배움을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증여가 반드시 실제로 발생했을 필요조차 없다는 데 있다. 제자가 “나는 이 사람에게서 이미 중요한 무엇인가를 받았다”고 오인하는 순간, 배움은 비로소 개시된다. 이때 스승의 권위란 어떤 실체라기보다, 바로 이러한 관계가 생성해내는 효과에 가깝다. 결국 배움이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자신을 여는 신뢰의 도약이며, 그러한 신뢰는 계산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교육은 바로 이 오인의 여백, 곧 신뢰의 도약이 자리할 공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모든 것은 사전에 설명되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하며, 평가 가능해야 한다. 학습자는 자신이 무엇을 얻게 될지를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배움을 선택한다. 이러한 투명성은 행정적 차원에서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배움의 본질을 이루는 미지의 차원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지금의 나로서는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참된 배움의 대상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교육의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우치다의 논의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다. 스승에 대한 신뢰와 채무 의식은 자칫 권위에 대한 맹종으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증여의 관계 또한 언제든 착취와 지배의 관계로 역전될 수 있다. 실제로 ‘스승’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어 온 폭력의 역사 또한 결코 짧지 않다. 따라서 그의 통찰은 스승을 신격화하라는 요청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태도에 관한 문제로 읽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점은 배움과 비판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충분히 배운 사람만이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어떤 사유를 끝까지 따라가 본 사람만이 그 사유가 멈추는 지점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비판은 미지의 세계 앞에 자신을 여는 신뢰에서 출발하여 그 배움의 과정을 통과한 이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사유의 형식이다.

 

결국 우치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스승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배움의 의미 그 자체다. 배움은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소비 행위가 아니라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해 자신이 변화되는 사건이다. 그렇기에 배움은 언제나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경험이며, 그러한 경험은 계산이나 계약으로 시작될 수 없다.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얻게 될지 알지 못한 채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스승은 뒤늦게 발견되고, 배움 역시 뒤늦게 자신의 의미를 드러낸다.

 

어쩌면 오늘의 교육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이는 이러한 사유가 오히려 선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자신을 열어두는 용기, 그리고 당장의 쓸모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인내야말로 가성비와 효율의 문법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배움의 첫 문법일 것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6.07.18 10:21 수정 2026.07.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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