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대 칼럼] 영화 속 ‘스칼렛’과 ‘빠삐용’

문용대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겨울이면 시골 논에 세워진 가설극장에서 영화를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신영균이 출연한 《빨간 마후라》나, 신영균과 최은희가 함께 출연한 《연산군》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또한 장동휘, 허장강 등이 출연한 액션 영화들도 즐겨 보았다. 특히 내 고향 출신 배우 박노식의 ‘용팔이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활력이 느껴진다. 김승호, 최무룡, 김지미, 문희, 김희갑 등 당시 유명했던 배우들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60~70년대에도 열렬한 영화광이었다. 당시 극장은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유일한 휴식처였다. 서울 을지로 중부시장 골목 안에 있던 동시상영관 ‘중부극장’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나에게 최고의 장소였다. 시설은 좋지 않았다. 의자는 딱딱해서 허리가 아팠고, 낡은 필름 때문에 화면에 줄무늬가 가득했다. 

 

소리가 울려 대사가 잘 안 들릴 때도 많았지만,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가끔 형편이 나을 때는 피카디리, 단성사, 대한극장, 명보극장 같은 개봉관을 찾아가 큰 화면으로 영화를 감상하기도 했다. 수많은 영화 중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작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빠삐용》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전쟁으로 인해 화려했던 귀족 사회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평화롭던 일상이 사라지는 모습은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린 듯한 허무함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버티는 스칼렛 오하라였다. 그녀는 고집이 세고 욕심도 많았지만, 황폐해진 땅에서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다"고 외치며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남았을 때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라는 대사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명보극장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여러 번 보았던 《빠삐용》은 자유와 인생의 가치를 생각하게 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빠삐용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준다. 특히 독방에서 환상을 보며 판사로부터 “네 진짜 죄는 인생을 낭비한 것”이라는 꾸짖음을 듣는 장면은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큰 잘못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백발노인이 된 빠삐용이 야자수 껍질 포대를 절벽아래 바다에 던지고 떨어지는 포대를 향해 뛰어내리며 “이놈들아, 난 아직 살아있다!”고 외치던 장면은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이후에도 나의 영화사랑은 계속되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해도 영화는 늘 내 삶의 활력소였다. 《나 홀로 집에》를 보며 웃었고, 《사랑과 영혼》을 수차례 보며 슬퍼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다이하드》를 보며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다. 때로는 《마루타》, 《여자 마루타》같은 충격적인 소재의 영화들도 가리지 않고 보았다. 극장이든 집안 비디오든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는 늘 내 생활의 일부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가 영화에 열광했던 이유는 영화가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해주는 위로였기 때문일 것이다. 스칼렛의 대사와 빠삐용의 외침은 결국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낡은 극장과 필름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삶이 지칠 때면 스칼렛처럼 내일의 희망을 품고, 초라해질 때면 빠삐용처럼 당당하게 어깨를 펴본다. 영화는 지금도 나에게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소중히 쓰고 있는가?" 지금도 내게 묻는 듯하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코스미안뉴스, 브레이크뉴스 고정 필진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각종 문학카페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수필집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선택’

이메일 : myd1800@hanmail.net

 

작성 2026.04.23 10:13 수정 2026.04.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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