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배 칼럼] 잊힌 기억의 감옥, 노인 요양원

이윤배

사회복지를 향한 관심이 어느 날 용기로 바뀌어, 나이 60이 넘은 만학도 자격으로 전문대학 야간 노인복지과에 입학했었다. 낮에는 학생들 가르치고 밤에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노인 만학도의 주경야독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정에서 가장 큰 충격은 책 속 이론이 아니라 실습 현장에서 마주했다. 실습 차 첫발을 내디딘 노인 요양원은, 단순한 시설이 아닌 삶의 끝자락이 마치 멈춰버린 듯한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곳에 수용된 노인 80%가 중증 치매 환자였다. 그들은 숨은 쉬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도 모두 잃어버린 채 하루를 먹고 자고 배설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면회 온 자식도 알아보지 못했고, 때로는 기저귀 찬 채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했다. 누구는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내고, 누구는 이유 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또 위협적 성향이 있는 노인들은 침대에 묶이거나 약물(수면제)을 먹여 강제로 잠재워지기도 했다. 눈앞의 풍경은 그 자체로 잔인하다 못해 짠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이들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조용히 놓여 있는 낡은 사진첩과 편지들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이었던 흔적들, 사랑이 담긴 기억들… 그러나 아무도 그 의미를 더 이상 되새기지 못했다. 사진 속 행복한 순간은 흑백이 되었고, 편지에 담긴 따뜻한 말들은 더는 읽히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삶은 마치 세상의 외딴섬, ‘노인 요양원’이란 공간은 고요하지만, 침묵과 절망만이 가득했다. 건강을 위한 활동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무의식의 바다에 잠긴 이들에게 변화와 회복은 공허한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사랑했던 집을 떠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몸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감옥 아닌 감옥, 이 모든 현실이 ‘현대판 유배지’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했다.

 

치매는 단지 노인 한 사람만의 병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고통을 부른다. 환자 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보호자, 환자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지는 가족들. 그런데 인력 손실과 의료비 증가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적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치매관리법 제정 등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지만, 환자 수는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년마다 2배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물적‧인적 자원의 임계점을 시험하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노인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멈춘 기억의 감옥이고, 인간 존엄성이 시험받는 최전선이다. 그 안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생명들은 단지 숨만 쉬고 있는 ‘환자’가 아니라, 그들은 한때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부모였고, 친구였으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풍경 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인간의 삶이란 결국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떠날 것인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요양원의 침대 위에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그들의 시간은 정지된 채 지금 조용히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들의 삶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그들을 기억하는 한, 그들의 시간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기억을 잃어가는 그들을 향해 조금 더 오래 시선을 머물러 주는 것,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우리 역시 지금의 그들처럼 그 길의 끝자락에 설 수도 있다. 그때 세상이 우리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 또한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그들을 잊지 않는 일이, 언젠가 잊혀질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

 

작성 2026.04.07 10:37 수정 2026.04.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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