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우리말 찾기] 제삿밥과 걸판(乞板) 이야기

이봉수

제사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이지만 한밤중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 제삿밥을 나눠 담아 동네 어른들에게 돌렸던 시절이 있었다. 밥과 탕국에다 나물은 기본이고, 생선과 떡과 과일을 맛보기로 조금씩 잘라 집집마다 돌렸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이라 동네 영감들은 사랑채에서 헛기침을 하면서 새벽까지 자지 않고 제삿밥을 기다렸다. 잠자는 손자를 억지로 깨워서 제삿밥을 먹이는 할머니도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느 나라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불과 반세기 전 우리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정성이 들어간 제삿밥은 맛이 일품이었다. 지방마다 다르지만 남부 해안지방에는 탕국을 끓일 때 두부와 무에다 깐 바지락과 문어를 잘게 썰어 넣는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 탕국은 맛이 슴슴하고 밋밋하지만 그 어떤 해장국보다 시원하다. 생선은 굽지 않고 쪄서 제상에 올리는데 주로 도미나 민어 등 고급 어종의 간고기를 사용한다. 풋나물과 함께 고사리와 도라지가 꼭 들어가는 5가지 이상의 나물도 있어야 제삿밥이라고 할 수 있다. 

 

제삿밥이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헛제사밥이 생겼을까. 경북 안동이나 예천 쪽에 그런 식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제삿밥은 향냄새를 맡고 귀신이 와서 먹고 간 것이라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은 헛제삿밥은 도무지 그 맛이 안 난다고 하는데, 아마도 제사 음식을 만드는 정성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음복을 하고 나서 도마 같은 데다 걸판(乞板)을 차려 대문 밖에 내놓았다. 조상을 따라온 외롭고 배고픈 귀신들을 위해 제물을 빠짐없이 조금씩 챙겨 술 한 잔과 함께 내놓는 배려였다. 겨울 산새들을 위하여 감나무에 홍시 몇 개를 남겨두는 까치밥과 함께, 걸판 문화는 나눔의 미학을 대표하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문화가 틀림없다. 정작 이런 것을 인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해야 한다.

 

제사를 지내고 날이 밝으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거지들이 나타나 제삿밥 구걸을 했다. 글도 모르는 거지들이 동네 제삿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격식 있는 집안에서는 쪽마루에 상을 차려 내놓고 걸인들을 대접했다. 이들을 미천한 거지라고 차별하지 않았다.  

 

그 시절 가난한 시골에서 흉년이라도 들면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인들을 만나면 밥을 드셨는지 묻는 것이 인사였다. 오전에는 "아침 자셨습니까?"라고 했고, 오후에는 "점심 자셨습니까?"라는 인사를 했다. 그러면 차마 굶었다는 말은 못 하고 "그래, 먹었다."라고 답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가난한 집에서는 제사가 큰 걱정거리였다. 오죽하면 "없는 놈 집에 제사 돌아오듯 한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형편이 어려운 집에 제사가 돌아오면,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왔다. 술 한 병을 갖다주는 사람도 있었고, 대구나 명태를 서너 마리 내놓거나 멧밥 지을 때 쓰라고 쌀을 몇 되 주는 이웃도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제삿밥을 나눠 먹던 제삿날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축제였다. 무주고혼(無主孤魂)들도 와서 걸판 음식을 먹고 갔고, 걸인들도 따뜻한 제삿밥에 술 한잔하고 갔다. 제삿밥은 귀신도 차별하지 않았고 사람도 차별하지 않았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반세기 전 제삿밥을 나누어 먹던 그 시절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시절 제삿밥이 그립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myisoonsinxsz.zaemit.com/

 

작성 2026.01.26 12:39 수정 2026.01.2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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